세계여행/페루

마추픽추 잉카트레일을 다녀와서

가리스마 2008. 4. 11. 15:13

 

마추픽추 정상에서 피는 담배 맛. ㅋ 죽여준다. 이 순간만은 세상이 다 내것이다.

 

 마추픽추를 가는길. 버스를 타고 가는데 산사태가 일어나 걸어서 갔다.

 잉카 트레일 첫날. 장장 8시간의 자전거를 타고 난 후 숙소에서 호주인 친구와 함께.

 둘째날, 산 속 민가에서 보여준 마리화나. 이곳 사람들은 재배도 하고 음성적인 판매도 아주 많이 한다.

100 그람에 몇십달라 정도.

 산 중턱의 작은길로 하루종일 걸었다. 아 디리도 아프고, 아래를 쳐다보면 낭떠러지에........

 이 좁은길로 말이다.

 계곡과 계곡 사이는 수동식 케이블카를 타고 건넌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한 강물......

 겁먹은 홍박사의 표정 ㅋ ㅋ.

 드디어 마추픽추 아래 마을,  아구아깔렌떼. 이 마을에서 하루를 자고 그 다음날 새벽에 마추픽추로 등반을 하였다.

 같이 여행에 동참했던 동독인 친구. 내일 등반하려면 침은 맞아야지.

새벽에 마추픽추 입구에 올라와서

 

 마추픽추 입구에서 입장 티켓을 들고. 찍고보니 꼭 현상수배자 같네. ㅋ ㅋ.

 마추픽추 전경

 아래에서 구름이 올라온다.

 그 시대 그 순간에 잠시 빠져본다.

 구름이 더욱 더 신비함을 준다.

 

 기념촬영 한컷.

 

함께간 일행들. 지금 쳐다봐도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기억이 생생하다. 

 

 

추억을 만들어준 마추픽추를 다녀와서. 2007.07.09- 2007.07.12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 첫 번째로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가 마추픽추 일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큼 어떠한 곳인지는 잘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피스코를 거쳐 그 유명한 나스카 라인(비행기나 공중에서 보면 사막위에 여러 가지 형상의 동물모양을 볼 수 있는 신비한 현상)을 볼 수 있는 나스카를 지나 이까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또 13시간을 밤차로 버스로 이동하여 드디어 쿠스코에 입성하였다.

단지 마추픽추만 보는 것은 쿠스코에서 열차로 2-3시간 걸려 마추픽추에 도착한 후 10분정도 등산을 하면 신비한 마추픽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잉카제국을 보는 것을 그렇게 해서는 감흥이 부족하다.

옛날 잉카제국 시대에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이동하는 옛날 그 방식대로 4박5일 동안 걸어서 이동하는 잉카트레일이라는 여행상품이 있는데 이 상품은 거의 1년 전부터 예약이 끝나있다. 왜냐하면 하루에 마추픽추에 입장하는 관광객을 5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배낭 여행객인데 그냥 말수 없지 않은가?

비록 40대지만 젊은 사람들이 트렉킹하는 잉카트레일은 힘이 들어도, 변형코스인 3박4일의 잉카트레일을 여행사를 통하여 1인당 150불에 예약하고 대 장정의 길에 접어들었다. 3박4일에 150불이면 싸지 않은가?

쉽게 말해 지리산 노고단을 가는데 여러 가지 코스가 있듯이 그중의 한 코스를 선택하여 트렉킹을 한 것이다.

우선 쿠스코에서 대중버스로 6시간을 걸쳐서 우르밤바, 오얀타이땀보를 지나 아브라말라가에 도착하였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보는 자연 경관은 지리산 노고단에 가기위해서 보는 지리산의 경관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의 해발은 거의3-4천 미터가 되기에 설산을 보거나, 산의 규모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대규모의 산을 감상하면서 이동하기에 장관이다.

이지역의 최고 높은 봉우리가 베로니카라는 산인데 해발 5682미터니 상상을 해 보아라.

버스가 해발 4350미터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을 내려 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고자 하는 지역의 중간지점 도로에 산사태가 나서 1시간정도 걸어야 한단다.

간단한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거리인데 작은 산을 하나 넘어 간다.

너무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숨이 차 이동하기가 참 힘이 든다.

그래서 여행도 한 살이라도 젊어서 해야 하는가 보다. z g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을 동여 메고 잘도 걷는다.

힘겹게 1시간을 등산을 하고나니 준비된 자전거로 6시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단다.

처음에는 그 까짓것 큰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 무슨 대수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까지 타 보았던 자전거를 신나게 탈 요령으로 약간 흥분이 되어 있었다.

1-2시간은 신나게 타고 포장도로를 타고 달렸다.

높은 산에서 내리막길을 전혀 페달을 밟지 않고 달리는 기분은 짱이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로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면서 자전거를 타는데 안장자체가 딱딱하여 어찌나 닿는 부분이 아프던지 즐거움이 고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일행은  신나게 달리는데 나만 유독 고통이 심하여 내가 키가 커서 그러나? 살이 없어서 그러나? ㅋ. 체중이 많이 나가서 그러나? 고민 끝에 가이드에게 고통을 호소하니 왜 진작 이야기 하지 않았냐 하면서 안장 수평을 맞춰준다.

결국 안장의 앞부분이 수평면에서  너무 높이 올라와 있어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좀 편안히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나, 비포장도로를 2시간정도 내려오다 보니 안장이 넘 딱딱하여 나머지 두 시간은 고행이다.

너무 그 부분이 아파서 말이야 z.

6시간을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곳이 산타마리아라는 해발 1430미터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다.

생각만 해보아라.

해발 4350미터에서 1430미터까지 3000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왔으니 말이야.

평생 탈 자전거를 다 탄 것 같다. z z.

그날 저녁 너무도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다른 외국인 동행자들과 거의 12시까지 한국식 폭탄주를 신나게 마시고 술에 취해 잠에 들었다.

너무 힘이 들고 술이 미처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이드가 새벽 6시에 모닝콜을 한다.

전날 밤에는 대한남아의 기상을 떨쳤는데 아직도 술이 안 깨어 있다.

이 컨디션에 젊은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니 오늘 일과가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은 산길을  걸어야 한다.

한국에서 등산은 조금 해보았으나 겨우 3-4시간 이었는데.

가이드가 말하기를 빨리 걸으면 8시간 이란다.

산타마리아에서 산타 테레사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고행이었다.

옷은 비에 젖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그래도 걸어야지 그냥 있는 다고 도착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서 죽겄다.

전신에 흐르는 땀, 피로감, 3-4시간을 걸으니 술이 깬다.

절경도 절경이지만 천 길 낭떠러지에 난 폭1미터 정도의 길을 걷는다.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한발만 잘못디디면 나머지 인생은 물론이고 내 여행의 여정을 마쳐야 할 상황이다.

평소에 고소 공포증이 있었는지, 낭떠러지에서 내려가는 계단은 너무도 겁이 나서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고, 남들은 표현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머리끝가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1-2시간을 걸었다.

그 이후의 길은 고통의 끝은 편안하듯이 그래도 좀 낳은 길이었다.

8시간을 걸어서 산타테레사에 도착하였다.

다들 기진맥진 한 가운데 해발 1900미터의 산타테레사에 도착하여 야외온천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하는 온천욕은 모든 피로를 한방에 날려버린 온천욕이 되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 친구들은 모기약을 뿌리고 난리였는데, 우리는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전혀 모기약을 뿌리지 않았는데, 점심시간쯤 되어 몸이 가렵기 시작한다.

페루모기는 우리나라 산 모기처럼 아주 작은데 한번 달라붙으면 쫓아도 도망가지도 않고, 처음 물을 때는 우리나라 모기처럼 따갑지도 가렵지도 않았으니, 한국사람인 홍박사와 나만 그 많은 모기가 물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그 다음날 밤부터  넘 가려워서 잠을 못잘 정도 였다.

긁고 또 긁고 ............................

한국모기는 그때 가렵고 하루정도 지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페루 모기는 하루정도 지나니 가렵기 시작하고, 붉게 올라오는데 거짓말 하나도 보테지 않고 한쪽 무릅 아래에 100방은 넘게 물렸다. 반바지 입었던 양 다리가 모두 피멍이 든 것처럼 붉다. 지금 1주일이 지나 쿠스코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도 가려워서 힘이 든다. g g

하루는 자전거로, 하루는 걷기로 몸이 너무 힘이 들어, 우리 일행은 다음날 6시간 걷는 산행을 포기하고, 차로 이동한 후 3시간 걸어서 마추픽추에 가까운 아구아깔렌테 마을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평평한 철길을 따라서 3시간 걷는 길은, 이전날의 강행군에 비해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걷는 것은 힘이 들면 쉬기라도 하지만 자전거는 내리막길에서 과속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긴장하면 타야하고, 또한 안장이 딱딱하고, 길은 자갈길이니 가지랑이는 통증이 오지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철길을 3시간 걸어 아구아깔렌테 마을에 도착한 그 날 오후는 자유 시간이다.

쇼핑도 하고, 3일동안 친해진 우리 일행과 즐기는 맥주는 꿀맛이다.

 대단한 것은 독일인 친구들은 첫째 날 자전거를 타면서 강하게 넘어져 두 친구 모두 다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퉁퉁 부어있는데도 둘째날, 셋째날 절뚝거리면서 걷는 그 정신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마치 독한 나찌 병정처럼 느껴졌다.

나 같으면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이 친구들은 끝까지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걸은 정말로 대단한 친구들이다.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40대라 더욱더 친해질 수 있었다.

드디어 내일이면 마추픽추에 가는 날이다.

새벽에 보는 마추픽추의 모습이 절경이라고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30분을 등산하여 5시30분에 해돋이를 볼 계획이다.

다른 일행은 그간 일정이 너무 힘이 들어 버스로 간다고 하는데 홍박사와 나, 호주친구, 스웨덴 친구 4명은 등산하기로 하였다.

힘든 후에 가져오는 대 장관을 보기위해서 말이야.

새벽에 일어나 마추픽추를 등반 하는데 내장산 서래봉 계단처럼, 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백두산보다 높아 고산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어 숨이 콱콱 막힌다.

깜깜한 산길을 후렛쉬를 가지고 올라가는데 숨이 콱콱 막히면서, 전신에 흐르는 땀은  고통스럽지만 꿀맛이다.


드디어 해가 밝지 않은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왔다.

너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날이 서서히 밝으면서 구름사이로  보이는 마추픽추의 대장관은 천하의 절경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세계 6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마추픽추가 선정된 것일까?


쉽게 말하면 이렀다.

잉카시대에 그 높은 산봉우리에, 지금부터 몇 천 년 전에 지어진 잉카제국, 900명 정도가 살았는데, 그렇게 깊은 골자기에 공학적인 기술도 변변치 않은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돌로 만든 잉카제국을 건설 하였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시대에 건축한 대 도시도 대단하지만, 그 주변 경관이 천하일경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곳 이라고 하였던가?

가이드를 따라서 구석구석 구경을 하고,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촬영하다 보니 한나절이 흘렀다.

꼭 보고 싶었던 마추픽추를 보고 내려오는 길은 허전하였다.

꿈을 이룬 후의 허탈감일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페루 전역이 대통령 물러나라고 데모가 대단하단다.

우리가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오는 열차를 이용하는데, 그날 아침부터 파업이란다. 그러니 정규열차는 모두 운행을 하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가이드가 안내하는 회사에서 열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단다.  그러니 그날 단 한번 가는 임시열차를 탈 수가 없다. 결국 부실 여행사를 통해서 우리가 잉카트레일을 온 것이다.

게다가 마추픽추 올라가는 전날 밤,   우리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에게 우리를 넘기고 줄행랑을 쳤다.

나와 2개월간 동행한 홍박사는 내일 쿠스코에서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 가야만 하는데 말야.

즐거움도 잠시s,

기차역에 갔다. 역에서 하는말은 오후 5시40분 열차만 떠나고 이전열차는 데모 때문에 떠나지 못했단다. 표가 없는 사람은 유일한 열차가 5시40분 열차인데

4시30분까지 역에 와서 혹시나 취소하거나 타지 않는 사람에 대한 표를 구 할수  있단다.

나와 홍박 사는 그날 꼭 쿠스코에 도착해야 하였기에 오후 2시부터 첫 번째로 줄을 서기 시작하였다.

한국 사람의 특유의 인내정신을 발휘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니 점차 대기자 줄이 늘기 시작하더니 결국 막판에는 개판이 되었다. 줄이 2중 3중으로 만들어 지고 난리 아수라장이 되었다.

역시 후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표를 구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우리의 해결사 홍박사가 막판에 뒤집기를 시도 하였다.

내일이면 미국으로 가야하는데 표가 없으면 안 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기차가 안되면 10시간이상을 버스로 가야 한다.

그러나 버스도 파업인지라 비싼 돈을 주고 택시로나 가야할 상황이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표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판단이 선다.

홍박사가 경비원의 제지를 뚫고 들어가, 역장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 겨우 어렵게 3장의 티켓을 구하였다. 그것도 기차출발 시간이 거의 임박하여 말이다.

홍박사가 스페인어를 잘 할 줄도 모르고, 그 역장 또한 영어를 못하는데 말이야. 대단한 해결사다.

무슨 영화속에서 지옥에서 대탈출하는 것 같이 스릴이 넘쳤다.

그러니 홍박사는 오죽 했겠는가. 아마 피가 말랐을 것이다.

우리 일행 중 3명은 함께 오지 못하고 말았다.

열차표가 있는 사람만 역안으로 들여보내고, 표가 없는 사람은 역밖 철창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4시간 동안 밖에서 서있으면서 이미 티켓이 있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쿠스코행 열차가 마치 천국행 티켓을 구하는 것 같이 힘들고 어려웠다.

이루 말로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표가 없어도 백이 있는 사람들만 열차표를 구해서 열차를 타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발이 심하니 흔히 뒷구멍이라고 말하는 역전의 다른 통로를 이용해서 말이다. 완전히 개판인 나라다. 질서도 없고,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 같았으면 9시 뉴스에 부정비리라고 난리가 났을텐데.

우리가 첫 번째 순서를 기다리느라 2시부터 4시간 기다린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억 만리 타향에서 백이 있으니 열차를 탄 것이 아닌가?

대단한 친구 홍박사다.

2개월간 함께 여행하면서 추진력,  돌파력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친구였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봤는데.

대단하다. ㅎ.ㅎ.

안되면 되게 하라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홍박사의 마지막 여행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종을 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2개월간 함께한 즐거운 여행이었고, 또한 다사다난한 마추픽추의 여행을 마쳤다.

홍박사 안녕.

누가 부러운지 모르겠다. 앞으로 더 여행하는 난지?

집에 돌아가는 홍박산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칠레 전역이대통령 물러가라는 파업이라, 열차의 종착역인 오얀타땀보에서 쿠스코로 오는  길거리 거리 마다 큰 돌들을 쌓아 놓고 데모를 하는 바람에 무수히 많은 큰 돌들을  치워 가면서 힘들게 쿠스코에 도착한 것이다.

역시 잉카제국의 후손이다.

돌로 멋진 마추픽추를 만들더니, 데모도  길거리 거리마다 돌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페루인 들이..........

영원히 기억이 되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