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코프 아우슈비츠 수용소
멀리서 말로만 듣던 수용소 입구가 보인다.
ARBEIT MATCHT FREI "노동은 자유를 만든다" 독일어로 씌여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2차 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하였단다.
1947년에 박물관으로 만들어 1979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다시는 이러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토록
하자는 의미겠지. 제뒤에 감시초소 입니다.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을 이곳 화장터에서 처리
당시 수용된 사람들의 산떠미처럼 쌓여진 신발들
무수히 많은 안경테
이런곳에서 짐승같은 삶을 살다가 최후를 맞았다.
수용소 전경.
제 2수용소 내부. 직접 기차를 연결하여 유럽전역에서 이곳으로 이송시켰단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키로미터 떨어진 제 2수용소. 브레제진카 수용소 전경.
모든 시설이 전기철장에 의해서 통제 되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모두 폭파시켜 흔적을 없애려 하였단다.
저 멀리 제 2수용소 입구가 보인다.
철길은 아는가. 그때 그시절을.................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2007.09.19일.
프라하에서 위쪽으로 폴란드 크라코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분명히 체코에서 침대칸을 산다고 샀는데 아니란다.
사실은 이렇다.
체코 말을 전혀 못하니 침대칸을 달라고 말을 못해
역안에 전광판에 침대칸 그림이 그려있어 그대로 그려서 티켓을 구한 것 이다.
내 그림이 피카소 그림이었나, 난 분명히 침대를 그렸는데
앉는 의자로 보였나.
덕분에 싼 가격으로 12시간 걸리는 야간열차를 탔다.
크라코프에서 2시간 거리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수용소의 규모가 상당히 큰데, 그것도 모자라 더 큰 제2수용소를 인근 5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지었단다.
살인 공장이라고 불렀단다.
그 수용소에 오면 죽어서 가는 것이 일정이란다.
이전에 나치 친위대들이 유대인 씨를 말리려고 수용소를 폴란드에 지었단다.
독일에서 만행을 저지르면 남 보기 뭐해서 그랬다나. 그러려면 뭐 하러 저 질러.
200백만 명 가까운 유대인들이 이 수용소에서 굶주려서, 맞아서, 가스실에서
남녀노소 없이 1940년대 초에 무참히 죽어갔다.
가스실에서 죽을 때는 샤워한다고 들여보내 놓고 그랬단다.
수용소에 그 당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을 이불솜으로 팔려고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들, 크고 작은 어른, 어린이들의 신발 산더미들, 안경 산더미들, 가방 산더미들, 생활용품 산더미들이 실제로 전시되어 있다.
굶어서 아사직전의 사진들, 수용소에서의 생활상들이 사진으로 낱낱이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독일인 들이 한 민족을 말살하려고 그런 짓을 인간의 탈을 쓰고 저질렀나 소름이 끼친다.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단지 유대인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 없이 무참히 죽어간 영령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써 죄책감을 느끼고, 명복을 빈다.